팔만대장경의 탄생

팔만대장경의 저본은 국본(國本)·송본(宋本)·단본(丹本) 등[구체적으로는 송본·구송본(舊宋本)·관본(官本)·국전본(國傳本)·국후본(國後本)·단본의 장경으로 분류]과 함께 국내의 사원 전래본을 삼았으며, 화엄종계열의 개태사승통(開泰寺僧統)·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 수기(守其 : 일명 守眞)와 수좌(首座)·내도량전주(內道場殿主)·승통(僧統) 천기(天其) 등이 수집하는 동시에 교정을 담당하였어요. 이 가운데 국본은 소위 초조대장경 등을, 송본은 『개보칙판대장경』 등을, 단본은 『거란대장경』을 각각 포함하며, 이들 인경본 역시 당시 고려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수기는 고종의 명령을 받아들여 교정 책임자로 역할하면서 여러 불교 지식인들과 함께 수집한 저본을 철저하게 교정하여 오탈자를 바로잡는 동시에, 특정 경전의 팔만대장경 입장 여부도 열띤 논쟁을 거쳐 확정하였어요. 
수기는 고종의 명령을 받아들여 교정 책임자로 역할하면서 여러 불교 지식인들과 함께 수집한 저본을 철저하게 교정하여 오탈자를 바로잡는 동시에, 특정 경전의 팔만대장경 입장 여부도 열띤 논쟁을 거쳐 확정하였어요. 이 작업 과정에서는 불교경전의 영역별 전문 지식인들과 협동 작업을 수행하여 원전 텍스트의 교정과 입장 여부를 정밀하게 진단하였으나, 일부의 경전은 당대 불교계의 현실 등을 고려하여 기존 자료를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였어요. 이러한 사실은 수기 등이 저술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 30권에 기술되어 있어요.

한편 경판의 조성과정에서 진행되는 나머지 작업 과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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